프랑스 파리에 가족끼리 함께 여행을 떠났다. 파리에서 연구한 것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바로 쏘기는 어려워 페혼느라는 작은 도시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파리에 가고자했다. 우리는 저녁 늦게 도착했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숙소는 그런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워낙 저렴한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잠을 자는 2층 방이 너무 더웠고, 닫을 수 없이 고장난 창문이 있었다. 첫 째 아이가 자는 침구에 동물의 털 같은 것이 묻어있기도 했다. 약 400킬로미터를 달려왔기에 우리는 일단 몸을 씻고 잠을 잤다.
일어나 화려한 파리 샹제리제 거리에 위치한 한 건물에서 발표를 하고 식사를 하고, 시 외곽 캠핑장으로 왔다. 우리는 파리에 온 김에 이틀 더 캠핑을 하며 그곳을 둘러보고자 했다. 첫날 밤을 자고 난 이후 팔에 붉은 반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둘째 아이는 귀와 목, 팔 다리, 나는 팔과 다리, 아내는 팔, 첫째 아이는 발 뒤꿈치가 수포로 뒤덮였다.
원인을 인터넷으로 뒤져본 결과 우리를 공격한 것은 좁쌀크기의 '빈대'였다. 베드버그로도 불리는 빈대는 아주 지독한 놈들이다. 문 당일에는 반응이 오지 않도록 어떤 물질을 주입한다. 물린지 다음날 부터 한 1주일간 엄청난 가려움을 선사하며, 살충제에는 왠만한 면역이 되어 있고, 알도 빨리 까서 완전한 퇴치가 어렵다는 것이다. 옷과 신발에도 잘 뭍어오기에 한 번 물렸다면 모든 옷을 고온으로 빨래 해야 하고, 왠만하면 접촉 가능성이 있는 가재도구들은 버리는 것이 좋다고 조언할만큼 끔찍했다.
우리가족은 파리를 돌아다니며 온 몸을 벅벅 긁어댔다. 제대로 된 구경이 가능할리 만무했다. 돌아와선 근 3일간 차에 있는 짐을 조금씩 들어 고온으로 '조지고' 집에 물건을 들였다. 이제 빈대가 주는 알레르기 반응은 모두 끝났다. 그러나 아뿔사, 여름 휴가를 같이 보내려 네덜란드에 온 조카를 한 호텔에서 잠시 기다리고 난 다음날 빈대 자국이 다시 올라왔다. 다행히도 지난 번 대처 방식을 익힌 덕에 이번에는 큰 걱정은 없었다.
나만의 대처 방식은 간지러울 때마다 알로에 수딩로션을 발라 열기를 줄여 간지러움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긁지 않을 수 있고, 긁지않고 버티며 향 히스타민제를 먹으면 되도록 빨리 회복할 수 있다. 여전히 괴롭기는 하지만, 약을 발라가며 해야 할 일을 계속 할 수 있다.
삶에도 이런 불쾌하고 불편한 일들이 일어난다. 나도 모르게 나를 물어 삶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의 말이라던지, 의도적인 괴롭힘이라던지 하는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귀찮음을 주는 상황들이 있다.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섞여 있는 교회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마지막때를 살아가는 사람들로, 이런 견딜 수 없는 간지러움을 선사하는 사람들로 인해 가야 할 길을 가지 않아서는 안될 것이다. 간지러운 반점에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줄 기도라는 수딩로션을 덕지덕지 바르고, 흉진 상처들을 부끄러워 말고 해야 말씀에 순종이라는 할일을 해 보자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짜증을 안고 해야 할일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인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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