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 구독을 눌러주세요
편집장인 저는 네덜란드에서 박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역사는 다원주의적인 사회를 추구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원주의 하면 딱 기가 질리는 분들이 계시지요. 제가 공부하는 사람은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사람으로, 교회는 확실히 신앙을 지키되 사회는 각자 받은 것을 가지고 다양한 모습의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네덜란드는 16세기 이 종교의 다양성이 명목상으로나마 보장되었을 때 가장 개신교의 힘이 강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한국하면 가장 병적인 질병이 학력으로 사람을 줄 세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학력위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정신질환이자 영적인 질환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학교에서 공부를 한 것은 아주 괜찮은 모습이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정도가 너무 지나칩니다. 수능점수만으로 사람의 질을 판단하는 것은 인종차별과 그 논리가 같습니다.
우월하다고 믿는 집단은 자신의 집단을 우월하다고 평가할 그럴싸한 근거를 제공하여 무소불위의 특권을 누리게 합니다. 그리고 열등하다고 판단되는 집단은 스스로 그 우월한 집단에 비해 불이익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만들지 않고 우월한 집단의 이야기를 참조해야만 하도록 만듭니다. 학력만 좋은 사람은 어떤 내용의 이야기만 듣고도 "그래서 어디서 공부하셨나요?"라는 사회적 지배논리로 대화의 상대방의 기선을 제압합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스스로 불리한 조건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아주 흥미로운 사회적 현상입니다. 자기가 이미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은 학벌이나 재산으로 몇 겹씩 덫칠되어 빛을 잃어갑니다.
저는 이곳에서 공부하며 유투브 '별놈들' 채널을 자주 봅니다. 별놈들에서 압권은 "문돼의 온도"입니다. 출연진의 본명은 모릅니다. 그러나 '나선욱'이라는 캐릭터, "유진이", 그리고 "소정이"는 아주 잘 압니다. 이들은 각자 말도 안되는 자신만의 세계를 살아갑니다. '나선욱'은 흔히 말하는 문신 돼지충으로 두 미녀의 사랑을 크게 받고 있습니다. "소정이"는 문돼충 선욱이를 아주 좋아하고 결국 유진이로부터 선욱이를 뺏어냅니다. "유진이"는 바보같이 당하기만 하고, 결국 사랑하는 남자를 빼앗깁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욕구에 아주 솔직합니다.
이들의 가치관과 도덕관에는 절대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아주 부끄럼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을 세상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거슬러 아무렇지도 하는 모습은 제게 큰 인상을 주었습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문돼충"으로 지칭하는 나선욱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충실합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좋은 사람으로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말이 맞건 안맞건 일단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봅니다. 그 황당한 것들이 웃음의 요소이고 병맛의 매력이지만, 적어도 그가 자신감있게 어떤 것을 이야기 하는 것에 있어 우리가 생각해볼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아름답게 지으셨고, 타락한 우리의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그 죄의 끔찍함이 우리의 모든 삶을 덮도록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구원에 있어 전적으로 타락하여 희망이 없어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구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 이외의 일반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죄를 억제하는 은혜로 선한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악에서 우리를 보존하고 계십니다. 저 사람은 예수도 안믿는데 더 예수쟁이같다는 말은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안에 있기 때문에 나오는 말입니다.
눈치보지 않고 살아도, 우리가운데 이미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해서 사람을 수능점수로 나누는 "학벌 귀신"에 대적해야 합니다. 이 학벌 귀신은 하나님의 다양한 아름다운 형상을 자신의 기준 아래 짓밟아 버립니다. 사실 교회에서도 이런 점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목사-장로-집사-평신도의 계급은 대다수의 평신도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윗 권위에 의해 통제되지 않으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여 그 독특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게 만듭니다. 교회에도 자신에게도 상당한 해가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이런 우리가운데 제도적으로 자리잡은 마귀의 장난에 눈을 부릅뜨고 경계해야 합니다. 마지막 겨울(종말) 이후 새로운 봄(새 하늘과 새 땅)에는 하나님의 완전하신 아름다운 영광이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 어두움 없이 찬란하게 비춰질 것입니다. 지금 이 때에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함을 부분적으로라도 부여받은 사람이고, 그것을 불완전하지만 보여줄 사람들입니다. 사회가 정한 검증 시스템에 자신의 마음을 맡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영원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매거진 '마지막 겨울'
이메일 구독을 눌러주세요
글 김정기
'편집장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집장의 편지] 디어도 용기를 내자 (0) | 2023.08.25 |
---|---|
[편집장의 편지] 빈대와 인생 (0) | 2023.07.23 |
오션 게이트 타이탄과 우리의 종말 (0) | 2023.06.26 |
[편집장의 편지] 하나님과 즐거움을 누리며 중독을 극복해보기 (0) | 2023.04.29 |
[편집장] 우리가 하려는 것 (0) | 2023.04.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