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이다.”(홍콩여행기)
LIFE 잡지, 종군 기자로의 삶을 살았던 로버트 카파의 명언이다. 그는 스페인 내전, 중일 전쟁, 이스라엘 독립전쟁, 2차 세계 대전 등 여러 전쟁 보도 사진를 주로 찍고 취재를 했던 인물이었다. 대표적인 사진으로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다. 이 사진에서 놀라운 지점은 카파 본인은 독일군의 시점에서 피사체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피사체의 대상은 연합군이다. 분명 연합군과 같은 배를 타고 노르망디에 상륙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더 나아가 고지에서 연합군의 모습을 프레임 안에 담았다. 카파의 사진은 정지해 있지만 역동하며 화약 냄새가 진동한다.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2019년 12월, 나는 즉흥적으로 비행기 티켓을 끊어버렸다. 도착지는 홍콩이었다. 당시의 홍콩은 중국의 범죄인 인도 법안으로 인해 촉발된 우산 시위가 지속되고 있었다. 영국에 할양되었던 때와 중국에 다시 반환되는 과정이 있었다. 중국은 일국양제의 조건을 내걸고 홍콩을 받아들였지만 간접 선거의 문제, 범죄인 인도의 조항까지 내걸게 되면서 시민들과의 갈등은 점차 심화되었고 점점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으로 번져 나갔다. 나는 역사적 현장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친구들에게 같이 동행하기를 권했지만 누구는 내게 미친 놈이 아니냐 물었고, 누구는 왜 그런 곳에 가느냐 물었다. 나는 역사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그저 궁금했을 뿐이었다.
평화로운 낮에는 주로 관광을 진행하였고 밤에는 누가 그랬냐는 듯이 흑색 옷을 입고 시위에 참석했다. 대규모 비폭력 시위로 진행됐고 매일 밤마다 데모 위치는 변경되었다. 시위 1시간 전부터 특정 비공개 홈페이지에 집합 위치는 공유되었고 나는 홈페이지 주소, URL을 알아 냈다. 게릴라 시위였다. 모두가 평화롭게 시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폭력과 탄압으로 맞섰고 놀라웠던 점은 시위 장소가 정해짐과 동시에 지하철 역은 단숨에 봉쇄되었다. 역은 존재하나 의문을 알 수 없이 모든 열차는 특정 역을 지나쳤다. 중국 정부의 발빠른 대처였다.
중국 공안은 방망이와 방패로 폭력을 행사하였고 거침없이 최루탄을 뿌려댔다. 나의 옆에는 로이터 통신 기자가 취재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무겁고 진지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수많은 검은 우산은 홍콩의 거리를 수놓았고 다양한 연령과 성별이 혼재된, 말 그대로 ‘남녀노소’가 집회가운데 참석했다.
어느 소녀는 나에게 쭈뼛쭈뼛 다가와 한 봉투를 건네 주었다. 자신의 가방 안에는 동일한 봉투가 수십개가 들어있었고 나중에 열어보니 수제 초콜렛이 들어있었다. 그 학생은 희망의 움직임을 초콜렛 봉투를 나눔으로 이어나갔다. 저 멀리에서는 가슴에 ‘프리 허그’ 라는 푯말을 들고 있는 채로 어떤 학생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격렬한 포옹을 하며 에너지를 주고 있었다. 많은 반성이 들었다. 그 행동과 노력은 아무도 기억을 해주지 않을 것이며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선은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았다. 어른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해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홍콩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지하철은 공안으로 폐쇄되었고 점포의 상인들은 혹여나 자신들이 받을 피해를 염려하여 문을 닫아나갔다. 세상은 차가웠고 냉정했다. 대형 백화점 안에서 일부의 시위대는 탈출하지 못하고 뭇매를 맞고 있었다. 백화점 밖, 광장에서는 함께 시위를 이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풀어달라고 계속해서 요구했다. 거리에는 자본의 상징과 같은 디즈니 겨울왕국 OST가 울려퍼지고 있었고 그 밑의 그리스도인들은 주보를 나눠주며 종이 십자가를 들어올렸고 백화점에 갇힌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메시아의 오심을 찬양했다. 지금도 영화처럼 연출한 것과 같은, 대비되는 놀라운 인상을 잊을 수가 없다.
마리아는 메시아의 발에 향유 옥합을 단번에 깨부쉈다. 세상의 강함과 권력이 이루지 못할 것을, 누군가 기억해주지 않을 행동으로, 헌신을 다해 전심으로 이루었다. 홍콩의 시민들이 이룬 것들도 동일하다. 성공과 실패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며 약할 때 강함되는 명제의 현현이다. 구원은 무력에 강함에서 비롯되지 않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과도 같은 한 인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루었다. 피사체에 죽음을 무릅쓰고 충분히 다가섰던 로버트 카파와 같이, 그리고 인간에게 충분히 다가오셨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인간에게 충분히 다가갔으며, 그는 구원자로 우리에게 오셨다.
다시 나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평생에 걸쳐 그 밤을 잊지는 못할 것이다. 연약함에 관계없이 맞서는 담대함을 알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오신 참된 의미를 배웠으며 그를 높이는 참된 의미의 찬양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가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값진 내용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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