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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경의 신앙인의 초상

[최원경의 신앙인의 초상 4] 아버지와의 컨택트

by 마지막겨울 2023.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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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임권택 영화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재직하고 광고 연출 감독이 되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콩국수를 즐겨 먹었다. 남대문 삼성본관의 뒷골목에는 진주회관이 있었고 아버지는 항상 그 콩국수를 좋아했다. 그 외에도  지역마다 갖고 있는 맛집 리스트가 있었는데 가령 신사동엔 영동설렁탕, 학동엔 평양면옥, 명동엔 하동관, 이남장이 있었다. 말고도 여럿이 있었는데 내가 자란 이후에야 그 출처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광고 연출자라는 본인에 업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임권택 영화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재직하고 광고 연출 감독이 되었다. 한 지점으로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직업이 아니고 매순간 뛰어다니는 귀뚜라미와 같이 항시 역마살이 깃들어 있는 삶이었다. 깊은 동굴에서 두꺼운 석순이 쌓아 오르듯, 아버지가 알고 있는 맛집의 갯수는 곧 그의 경험의 반증이자 경륜이었다. 

 

최원경의 아버지 최대용 감독


그에게는 맛집을 자랑하는 태도 이외에도 여러 습관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가야할 길을 본인이 반드시 제시해야 했다. 어느 경로로 갈아 타야하는지 뭐가 그리 중요한가, 요즘엔 AI가 알아서 길을 찾아준다. 하지만 그가 알고 있는 길 이외에 다른 길을 언급하면 그는 노발대발했다. 다른 방향성의 제시란 곧 자신에게 주어지는 도전과 다름없었다. 화를 내는 모습에 어렸을 때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 만사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것들이 그 자리에 배치되어 있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자 나름의 근거를 바탕으로 한다. 나의 부모가 그렇게 행동했던 까닭 또한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감독으로서 주어진 하루의 과제를 끝마치기 위해서 진두지휘해야 함은 필수였다. 당시 현대와 같은 내비게이션이 있었겠는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은 그에게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경향이자 태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습관이 바탕이 되었고 손가락의 봉숭아 마냥 그의 행동에 스며들여 있는 습관들을 나는 오랜 시간이 되도록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왜 항상 밤 늦게 술 취한 채로 들어와서 오후가 되도록 잠만 잤을까, 우리 집엔 왜 판때기로 된 슬레이트와 천으로 된 의자가 있는 것이며 그것에 그리도 집착을 하는 것일까, 홍콩 영화의 OST 음악은 왜 배경음악으로 들렸던 것일까, 항시 나에게 주어진 의문이었다.



부친은 연출 감독을 하셨고 숙부 께서는 촬영 감독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집안 사람 대부분이 영상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나도 또한 어린 시절 그 영향을 받고 자라났다. 아버지는 왜 항상 밤 늦게 술 취한 채로 들어와서 오후가 되도록 잠만 잤을까, 우리 집엔 왜 판때기로 된 슬레이트와 천으로 된 의자가 있는 것이며 그것에 그리도 집착을 하는 것일까, 홍콩 영화의 OST 음악은 왜 배경음악으로 들렸던 것일까, 항시 나에게 주어진 의문이었다. 나는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해 적자 뿐이었던 편의점 운영을 중단하고, 병원비를 벌기 위해 광고 촬영팀 막내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떄부터 가족의 이유에 대해서 대단히 온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촬영을 지휘하던 최대용 감



모든 TV에 나오는 광고는 프로젝트마다 하루 아니면 이틀 안에 찍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이 저녁 10시에 끝나면 일찍 끝난 것이고, 보통 새벽을 넘기곤 한다. 늦게 끝나는 경우는 아침 8시에 끝나기도 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나면 회식을 한다. 하루의 피로를 한잔의 술로 푸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쉬움과 고마움을 그 자리에서 푸는 듯 했다. 다른 아버지들은 회사에 아침 일찍 출근을 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버지는 왜 그랬을까, 나는 하룻밤을 새고 단번에 알게 되었다.

 


모든 권위가 그 ‘아무것도 아닌 의자’에서 나왔다.



그가 평소에 집착하던 물건들은 단서가 되어 기계의 톱니가 맞물려, 서로 맞춰지듯 알 수 있었다. 쓰지도 않는 물건들, 오래된 카메라, 음원 CD, 저작물 비디오는 자신을 이루는 요소였던 것이고 자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의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장을 가서 직관하여 바라보니 모든 권위가 그 ‘아무것도 아닌 의자’에서 나왔다. 감독이라는 위치에서 발현된 명령과 진행이 바로 그 물건에서 나왔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조명을 왜 비추는 것인지, 카메라는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조감독 때의 일화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여러 질문을 던졌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기술은 발전했지만 촬영 제작 과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람이 서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대상을 만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상대방을 진실되게 공감한다는 것, 알아주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 중에 하나이다. 아버지는 공감하는 아들에게 기쁨을 표현했고 부자 간에 이런 공감은 개인적으로 값진 경험이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영원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매거진 ‘마지막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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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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