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팔, 모니터가 왜 안나와 최원경!”, 선배는 나에게 거세게 외쳐댔다. “지금 바로 해결해놓겠습니다.” 나는 즉시 대답했다.
촬영 현장은 50여명의 스태프들이 함께 했지만 마치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필요로 하는 부분에 맞춰지는 하나의 퍼즐 조각처럼 한 사람의 역할은 중요했다. 막내일지 모르지만 그런 나도 분명히 있어야 하는 이유는 명확했다. 렌즈 운반과 모니터 송출, 하루에도 수십번 이름이 불렸다. 그 과정에서 수도 없이 혼났지만 나는 조수로서의 삶이 좋았다. 마치 한가지 움직임에 대해서 갈고 닦는 운동선수 마냥,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몸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에 쾌감이 있었다.
촬영팀으로서 갖춰야하는 덕목 중에 하나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했다. 현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나의 귀는 열리지 않았다. 못 듣다 보니 처음에는 누군가 옆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들을 수 있었고, 운 좋게 들었다고 하더라도 특정 숫자(24,36,48,800,5600 등)가 조명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카메라를 이야기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조수는 감독꼐서 아무리 작게 속삭이더라도 그것을 감지하고 들어야 한다. 엄밀히 말하면 매순간 깨어 있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했다.
어려서부터 목회에 비전만을 품고 살았던 나는 기도와 묵상 중심의 사고를 하며, 내면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였었고, 실제 음성에 집중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오히려 지난 날을 돌아보며 회개했다. 단순한 명령어조차 감지 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고통의 상황을 감지하려 했었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회개의 지점이 여럿 존재했는데, 나는 누군가의 움직임과 행적에 대해 이토록 오랜시간 집중해본 적이 없었다. 감독께서 왜 앉았는지, 카메라를 왜 잡았으며, 설정을 바꾸는 이유는 무엇인지 조수는 분명히 알아야 했다. 그가 앉았다면 의자를 갖다 주어야 하고 카메라를 잡았다면 고정장치를 풀어야 하며, 감도를 바꿨다면 프레임레이트와 노출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것은 개인의 여건을 고려되지 않았고, 누군가의 어떠함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이틀 연속 밤새는 순간에서도 깨어있어야 했다. 분명 성서의 말씀에 명시된 것은 알았지만 단순히 로고스(LOGOS)가 아닌 레마(RHEMA)가 되어서 분명하게 알려진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예수의 행적에 대해서 긴 시간 집중해본 적도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갖은 활동들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깊이 애정을 갖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도 3일 연속 밤을 새고 아침 6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시계의 초침은 여전히 째깍거렸다. 피자 TV 광고를 찍고 있었고 촬영 감독은 미술 실장과 함께 카메라 앞에서 열심히 모짜렐라 치즈를 뿌리고 있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입장에서 보았을 때, 참으로 기괴한(?) 광경이었다. 감독은 여전히 모짜렐라를 카메라를 향해 던지고 있었고 나를 제외한 조수 3명은 각자의 자리에서 기절했다.
포커스는 자연히 안맞았고 그는 분노와 함께 뒤돌아 보았다. 그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분명 그 내두름의 의미는 “한 시도 나와 함께 깨어있지 못함”을 한탄하는 누군가와 동일하게 비춰졌고 어느 산에서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했던 유대인이 보였다. 물론 개인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 일치되어 관통되는, 일이관지의 경험이었다.
어느 날은, 무릎을 꿇고 감독님을 보좌하고 있었다. 그리고 감독께서는 물건의 위치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치워!”라고 말한 후 의자에 발길질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정확히 인지가 되었다. 감독님은 나의 주인과 다름없었고 이것이 명확한 관계 정립이었다. 매번 ”나의 주님이시며 주의 종입니다“이라고 찬양하고 부르지만 그 때가 되어서야 명확한 ‘그 분과 나와의 차이’를 인지했고 그 관계 정립은 직업 세계를 통해서 명시되었다.
인지 하지 못했던 성서에 명시된 내용들이 입체적으로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상황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성서 당시의 예화는 자유와 인권이 박탈된 극단적 상황임이었음이 당연하고 그런 극단적 상황을 대리로 체험할 수 있는 적합한 직업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교회 안에만 있었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었던 성서의 내용들과 예화들이 진격하는 인상은 잊을 수가 없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영원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매거진 '마지막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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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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