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대량생산의 시대가 열리면서 귀족과 상류층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던 패션은 대중화되었고 더욱 다양해졌다. 산업과 경제의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는 물질 만능주의와 개인의 소외와 같은 여러 사회적 부작용이 드러났고, 주류 사회와 획일화된 제도에 반발하는 반문화가 형성되었다.
안티패션은 이러한 반문화와 하위문화에서 나온, 기존에 정립된 질서에 반하며 전통적인 패션의 틀에서 벗어난 패션 스타일을 뜻한다. 비주류 문화로 불리는 하위문화, 즉 서브컬쳐가 자리 잡게 되면서 귄위적이고 지배적인 권력과 체제를 거부하는 집단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패션이기도 했다. 그중 대표적인 패션 스타일로는 히피룩, 펑크룩, 모즈룩, 그런지룩 등이 있다.
안티패션에서 주류패션으로
안티패션은 하위문화의 정체성이 담겨있다고 했다. 1960년대 폭력에 저항하고 자연으로의 회귀를 주장한 히피족은 꽃과 같은 자연물이 그려진 옷과 에스닉한 패턴을 활용한 치마나 판탈롱 팬츠를 입었다. 대표적인 반항아들로 보이는 런던의 펑크 문화는 록 음악으로 먼저 표현되었고 이후 패션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한껏 뻗친 머리카락, 체인과 안전핀으로 만든 액세서리, 찢어진 바지와 가죽 재킷이 연상되는 펑크 룩은 현대 패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현실의 우울함과 불안함을 떨쳐내고 주류에게 무시당하던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서브컬쳐의 패션은 대중들에게 독창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어느새 하위문화는 대중문화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안티패션은 주류 패션과 섞이게 되었으며, 이에 영감을 받은 현대의 새로운 스타일이 탄생하게 되었다.
비주류가 주류에 편입되면서 그 패션 스타일의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안티 패션이 주류 패션의 일부가 되자, 기존의 규칙을 거부하고 패션의 틀에 저항하던 서브컬쳐의 신선함과 특별함이 사라졌다고도 볼 수 있겠다. 대표적인 비주류 문화였던 스케이트, 힙합, 스트리트 패션도 이제는 주류에 편입되며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의 매력이 더 이상 새롭지 않고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한가지 스타일이나 룩이 유명해지고 많은 이들이 따라 입게 되면 괜스레 그 옷을 입기 싫어지는 것을 보면, 필자 안에도 반항의 DNA가 들어있는 것 같다. 필자는 비주류가 주류가 됨으로써 그 정체성이나 의미가 퇴색되었다기보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대에도 기존의 질서를 버리고 다름을 추구하는 또 다른 안티패션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반항하고, 재미를 느끼고,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며, 끝없이 새롭고 신선한 것을 찾아 나선다.
비주류의 종교
필자가 아는 한에서의 이스라엘은 비주류 국가였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던 민족이었고, 이집트의 노예였고, 바빌로니아의 전쟁 포로였고, 로마의 식민지였다. 그들은 고통과 수모를 겪어 왔음에도 하나님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사마리아인을 배척했고 예수님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탄압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방인들과 자신의 입지를 흔드는 자들을 억압하고 죽였다.
그들 역시 과도한 우월주의에 빠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비주류인 우리를 구원하러 이 땅에 오신 메시아 예수님을 기억해야 한다. 작고 낮은 자를 사랑하시고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중세 시대 주류가 되어 권력과 함께했던 기독교는 현대에 이르러 또다시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있는 듯하다. 과학과 기술이 최고가 되고 합리성이 가장 뛰어난 덕목으로 추앙받는 시대에 신앙과 믿음은 비합리적이고 증명되지 않은 심리적 현상이 되고 종교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는 무지한 사람들로 평가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주류가 되려 발버둥 치지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믿고 겪은 하나님을 전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의를 구할 뿐이다. 비주류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긍휼히 여겨야 할 것이다. 비주류로서 외롭고 고독한 길 위에 있다고 좌절하지 않길 바란다. 누군가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한탄할 필요도 없다. 그저 기독교인으로서 낮은 자의 하나님과 동행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비주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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