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채널 디스커버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미국 항공 우주국 나사, 팬 아메리칸 항공사 팬암 등 의류와는 상관없는 각 회사의 로고가 요즘 길거리 사람들의 옷에서 많이 보인다. 유명 티브이 채널과 스포츠 리그, 명문 대학까지, 각자 분야에서 명성 있는 이 회사들이 의류 사업에까지 진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 의류들은 본사와 전혀 상관없는 기업에서 브랜드의 판권을 구매해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라이선스 브랜드라는 것, 이제는 다들 알 것이다.
라이센스 브랜드는 해당 브랜드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그 이름과 로고를 빌려와 제품을 생산하는 것으로, 본사에서 만들거나 유통하는 제품이 아닌 사실상 다른 회사의 의류 제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라이센스 브랜드의 가장 큰 장점은 이미 성공한 회사의 이름을 사용해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브랜딩 과정을 최소화하고 이미 사람들 눈에 익숙한 회사의 유명세를 통해 빠른 매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패션 라이선스의 시작과 성장
1973년 삼성물산이 미국의 캐주얼웨어 브랜드 맥그리거의 상표를 사용해 국내 최초의 라이선스 브랜드를 론칭한 것을 이후로 이브 생로랑, 닥스, 발렌시아가 등 국내에서의 해외 명품 브랜드 라이선스 사업이 전개되었다. 기존의 라이선스 기업들이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티브이 채널, 잡지, 자동차, 대학, 항공 등 비패션기업의 라이선스 브랜드가 등장하면서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이는 2000년대부터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며 2022년 기준 국내 패션 라이선스 브랜드는 총 82개 사 634개로 집계되고 있다.
2020년 론칭한 코닥 어패럴은 지난해 800억 원의 매출을 내는 기염을 토했고 라이선스 브랜드 MLB와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을 소유한 F&F는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1조 8,089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비패션기업의 라이선스 브랜드는 기존의 패션 브랜드가 아니었기에 기존의 제품들과 관계없이 국내 트렌드와 소비자 입맛에 맞게 패션 제품들을 제작하기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라이선스 브랜드는 해외로 역수출되기도 하면서 이제는 패션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라이선스 브랜드의 문제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
국내 라이선스 브랜드의 성공을 필두로 수많은 라이선스 패션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런 브랜드까지 옷으로 나오나 싶을 정도로 많은 회사가 라이선스 브랜딩에 뛰어들고 있는 지금, 라이선스 브랜드의 이면에는 여러 한계점도 존재한다.
우선 라이선스의 계약 기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라이선스 브랜드가 자리 잡은 국가에서 성공을 이룬다고 해도, 계약이 무기한 연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라이선스 브랜드의 수완을 보고 본사가 자회사를 통해 직접 진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렇다면 라이선스 브랜드는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하고 사업을 접게 된다.
두 번째로는 소비자들이 라이선스 브랜드를 모르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유명 모델과 연예인을 광고 모델로 앞세운 라이선스 브랜드는 본사 브랜드의 역사와 헤리티지를 지니거나 접목한 것처럼 광고하기 때문에, 구매자들이 실제로 라이선스 제품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구매하게 되는 사례를 주변에서 볼 수 있다. 필자도 해당 브랜드의 익숙함이나 신뢰성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해당 옷을 구매한 후 라이선스 브랜드라는 것을 알게 되어 속았다고 말하는 커뮤니티의 몇몇 글을 접한 적도 있다.
마지막으로 카피와 품질에 대한 문제가 있다. 라이선스 제품이 해당 브랜드의 로고와 색감을 활용한다고 해서 그 브랜드를 모두 표현하고 그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포츠 구단의 로고를 넣었다고 해서 제품의 기능성이 올라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자연 탐험 방송 채널 로고를 단 아웃도어 브랜드 역시 특별한 아웃도어 기술을 적용하기보다는 대중들이 쉽게 구매할 만한 일반 기성복에 가까운 옷을 만든다.
소비자들은 라이선스 브랜드가 그들의 헤리티지를 정말로 적용한 것이 맞는지 제대로 알 권리가 있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한 라이선스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스토어를 둘러보던 중, 국내 유명 브랜드의 제품과 매우 유사한 디자인을 보고는 실망하여 가게를 나온 기억이 있다. 이러한 카피 문제가 비단 라이선스 브랜드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패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대중들이 선호하는 제품들을 선보이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쉽게 내는 제품이 언젠가는 브랜드 이미지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옷을 사랑하는 패션 피플들은 기존에 좋아했던 패션 브랜드가 국내에서 라이선스 브랜드로 탈바꿈하여 그 아이덴티티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 소비자들은 보기에 예쁘고 편한 옷을 소비한다. 동시에 익숙하고 이미 성공한 브랜드의 로고가 들어간 옷을 입는 것에 대한 만족감 역시 구매 기준에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정도의 기준이라면 라이선스 브랜드는 그들의 목표와 성과를 이뤘다고 볼 수 있다. 라이선스 브랜드의 방향이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소비자가, 그리고 시장이 할 것이다. 앞으로 라이선스 브랜드의 행보를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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