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교수의 강의는 여전히 지루했다. 수업이 끝나갈 때쯤 교수는 학생들에게 말했다.
“오늘 오리엔테이션은 여기까지고 책을 저렴하게 구하고 싶은 사람은 말하세요. 정가에서 10% 저렴한 가격에 줄거니까…”
몇몇 교수는 학문을 가르치기 위해 신학생으로서 익혀두어야 할 책을 구해오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자신의 저서를 팔기에 바빴고, 오늘의 교수도 그와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난 뒤, 신학교의 하늘은 푸르렀다. 나무들은 울창했고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은 나로 하여금 가슴 뛰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지나간 자리, 시간을 머금은 듯한 따뜻한 인상을 주었다. 다른 이들보다 늦은 나이에 신학교에 입학했다. 당시의 어머니의 권유도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타인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있었다.
그런 신앙의 출발점은, 고교 시절 기독 동아리와 20대 초반 투신했던 선교단체 활동에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무심코 시작한 기독 동아리 활동은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기심과 질투가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이 아닌, 나라와 민족, 속한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서 기도하는 학생들의 모임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게 만들까 의문이었고, 그 의문은 충분히 자신마저 사역 가운데 뛰어들도록 만들었다. 초기의 기독 동아리 기도모임을 5명으로 시작했고 추후에 80명에 가까운 인원으로 마무리됐다. 가끔은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당시 쓰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감사한 지점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신앙생활이라 함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단순히 은사주의자들이 바라는 기분이 좋아지는 단계가 아니며 개인의 성품과 인격이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의미하는 것이라 사료된다. 아가서에 명시된 건재한 신부의 묘사와 같이 매순간 동행하며 사랑을 나누리라 기대하고 짐작했다. 하지만 초심자의 행운은 거기까지였고 고난이 시작되었다.
초심자의 행운은 거기까지였고 고난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원인 모르게 아팠다. 신학교를 가기 전에 잠시 편의점 점장 일을 하게 되었는데, 항시 어머니의 호흡은 가다듬어지지 않았고 숨을 못쉬어 매순간 응급실과 중환자실로 실려갔다. 그 때 알게된 점은 의사들은 절대 모르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날도 흰 색 가운을 입은 그들은 나에게 일제히 고했다. “추이를 지켜봅시다.”
그렇게 낮에는 편의점을 운영하고 밤에는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곤 했다. 그렇게 호흡이 돌아오지 않은지 3년이 되어갔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가,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의학용어를 줄줄 말하고 다녔다. “기본적으로 Asthma 진단을 받으셨고 saturation 70까지 유지되다가 이하로 떨어지니까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기도 삽관은 되도록이면 안해주셨으면 합니다”, “산소 포화도 때문에 동맥혈 채혈을 하는 것으로 아는데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여간호사는 나를 빤히 보더니 직업이 간호사냐며 반문하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난 받으시는 어머니 덕분에 율법주의자부터 은사주의자까지 넓은 스펙트럼의 기독교인이라 불리울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었다. 모든 참견은 고난의 때에 동반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종류의 참견을 하였다. 어떤 이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어머니가 그렇게 된 것이라 말했고, 어떤 이는 권능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어떤 이는 꿈을 꿨다고 말했다. 어떤 이는 자신에게 기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말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의인 10명만 있다면 도시를 죽음 가운데서 구원해 달라고 간청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의인의 정의는 도덕적인 사람, 위대한 투쟁을 한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그러한 관점에서 병석에 얌전히도 누워 있는 그녀는 분명히 의인이었다.
숨을 못쉬고, 중환자실을 밥먹듯 들어가고, 어느 목사는 자신의 은사로는 치유되지 못하자 교회에서 내쫓았다. 그런 취급을 당하면서도 그녀는 나에게 “하나님은 어느 순간에도 원망하면 안된다”고 선언했다. 기괴한 예수쟁이들은 여전히 함부로, 하나님의 말씀이라 치장하며 배설하고 있었고, 그녀는 여전히 힘들어야 했다. 의인에게 주어지는 고난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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