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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의 패션 이야기

[최재훈의 패션이야기] 획일화된 K-패션 당신은 패션의 공식을 따르고 있나요?

by 마지막겨울 2023.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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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도쿄에 갔었다. 코로나 이후 첫 해외 여행이었는데, 내리자마자 내 두 눈을 의심했다. 여기가 내가 알던 일본이 맞았던가. 한국인 관광객들이 공항과 지하철도를 가득 채운 것 처럼 보였다. 특히 여성들의 옷차림과 화장법, 외모가 서울 사람들과 매우 닮아 있었다.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4년 전 다녀온 도쿄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K-패션과 K-뷰티가 이곳 전역에 뿌리내렸달까. 새삼 한류와 케이 문화의 영향력을 알게 됨과 동시에 내가 기대했던 개성 넘치는 재패니즈들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아 조금 아쉬웠다.
 
 남친룩, 모나미룩, 롱패딩족 등의 단어들에서 보이듯 사람들은 트렌드와 그 시대 주류 패션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러한 유행은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이것은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도 지속해왔던 현상이다. SNS의 발전으로 전 세계의 라이프스타일과 패션을 공유할 수 있게 된 지금, 문화적 다양성과 개별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정답을 찾고 그를 따라가려는 모습들이 보여진다. 
 
한국의 국룰 문화를 예로 들어보자. 국룰은 ‘국민 룰‘의 줄임말로 정식 규정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통용되거나 유행하는 규칙을 가리키는 말이다. ’치킨에는 맥주가 국룰‘, ‘흰 티에는 청바지가 국룰’과 같이 다수가 동의하는 기준을 국룰이라고 부르며 이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들은 이것이 평범한 것을 넘어 정상적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반대로 그 국룰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특이한 사람으로 여기고 그들의 취향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배척하는 경향도 있다. 

 

<일본 오사카의 밤 풍경>

패션 유튜브나 커뮤니티를 보면 패션 입문자부터 잘 입는 사람, 힙한 사람 등이 존재하고, 당시 트렌드에 맞는 스타일링을 추천한다. 그들은 옷에 투자한 비용을 보고 계급을 나누며 서로의 패션을 평가하기도 한다. 이 옷에는 이런 아이템을 매치하는 게 좋다거나, 어느 나이대에는 얼마 정도를 옷에 투자해주는 게 좋다거나 하는 식으로 유튜버나 셀럽들이 제시해 주는 기준에 따라서 입는 것이 국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때 필자 또한 옷을 잘 입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커뮤니티와 패션 유튜브, SNS를 찾곤 했었는데, 이곳에서 소통하는 이들이 제시하는 옷 잘 입는 기준으로 나와 주위 사람들을 평가했던 기억도 있다.

물론 패션 선진국의 패션을 모방하고 획일화된 주력 유행을 중심으로 패션 산업을 구축해 나간 것이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규모를 늘리는 때는 지났다. 지나친 카피, 가품 문제와 로고플레이를 통한 패션의 서열화, 일원화가 K-패션의 색깔이 되게 놔둘 수만은 없다. 진정한 K-패션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우리 브랜드들의 아이덴티티가 필요하다. 자신들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문화를 주도해 나가는 그러한 패션 브랜드가 많아져야 할 것이다. 옷은 있는데 메시지는 없고, 패션이 있는데 문화가 함께하지 않는다. 그 속에 가치관과 신념이 담겨있지 않기에 소비자들은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고 그러한 브랜드는 지속되기 어렵다.

국내 유행의 획일화는 한국인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회피와 획일화된 교육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사회는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한다. 이에 적응하기 위해 누군가 제시하는 정답을 따르려는 태도가 불확실성을 줄이고, 빠른 성장에도 도움이 됐지만, 이를 통해 대중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없애고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부족한 성숙도의 단면 역시 드러나게 되었다. 획일화된 교육, 기업 문화, 건축 등에 대한 각 분야에서의 비판의 목소리들이 높아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이 더욱 성숙한 문화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방식들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해 깊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다양성은 존중받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 취향은 옳고 그름의 문제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멋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멋에는 정답이 없고, 아름다움은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받아들일 때, 한국 패션에는 더 창의적이고 멋진 디자이너들이 탄생할 수 있다. 타인의 옷차림을 평가하고 순위 매기는 문화에서 벗어날수록,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패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남의 시선에 얽매여 유행에 맞춰 옷을 입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옷,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찾고 자신만의 독특한 룩을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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