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어김없이 덥고 습한 여름이 찾아왔다. 옷장을 열어보니 작년엔 뭘 입은 걸까 싶을 정도로 옷이 없어서 반팔 티셔츠 쇼핑을 좀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월세와 생활비 등에 치여 옷을 살 여력이 없어서 나는 만 원에서 이만 원 정도 하는 값싼 무지 티셔츠와 쇼핑몰 미끼 상품인 2+1 반팔 니트 같은 저가 여름옷을 몇 벌 사서 돌려 입었다. 그런 옷들은 브랜드를 특정하기도 어렵고 어두운 계열 색으로 구매하면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싸구려 소재나 값싼 봉제 형태 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졸업을 하고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집값이나 밥값 고민을 조금은 덜 수 있어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고, 밖에서 패디과라고 하면 옷차림에 대해 나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에 그 기대에 어느 정도는 부응할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맘에 드는 옷을 골라보기로 했다. 주로 온라인 플랫폼에서 쇼핑하던 나는 여자친구와 서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백화점이나 쇼핑몰, 편집숍을 꽤 많이 다녀봤다. 오프라인 숍들은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요즘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는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시장 조사 겸 찾아다녔다.
마음에 드는 옷을 찾기도 힘들었지만 괜찮아 보이는 옷을 찾아 가격표를 보고 나는 많이 놀랐다. 물가가 오르긴 했다지만 이게 맞는 가격일까 싶었다. 기본 5~6만 원이 넘었다. 20~30대 젊은 층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티셔츠는 8~9만 원, 10~15만 원을 호가했다. 신발은 10만 원 이하의 제품을 찾기가 쉽지 않았고, 예쁘다 싶은 제품들은 정가 이상의 프리미엄, 즉 리셀가가 붙어 20~30만 원이 훌쩍 넘는다. 내가 예쁘다고 느낀 제품들은 다들 어떻게 아는지 벌써 품절되어 구하기가 어렵다. 빈티지 의류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류비가 올랐다고는 하지만 수입 구제 빈티지 가격이 물가 상승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높아져 있었다.
패션을 사랑하는 20대로 살아가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 듯하다. 100만 원대 패딩이 불티나게 팔리고 오히려 20~30만 원대 패딩은 재고가 쌓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몇 년 전 옷을 좋아하는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옷은 돈이라고 생각해.“ 그만큼 돈을 투자해야 멋진 옷을 입게 되고 사람들로부터 옷 잘 입는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당시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제 그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조금씩 나이도 들어가면서 이 정도 브랜드는 입어줘야 한다는 관념도 생긴 것 같다. 센스 있어 보이는 룩을 완성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높은 가격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를 보고 놀랐다. 어찌 보면 우리는 자기만족보다는 남들의 눈과 기준에 맞춰 옷을 입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패셔니스타도, 트렌드 세터도, 요즘 말로 힙한 사람도 아니며 그저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지만 이러한 추세를 따라가기가 꽤나 벅차다고 느꼈다.
어떤 유튜브 채널은 길거리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착장에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묻기도 한다. 몸에 몇백만 원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20-30대 젊은이들이 과연 이 비용을 감당할 수가 있는 걸까. 나는 한국 청년들의 옷차림에서 위태로움마저 느꼈다. 정말 아슬아슬하다. 청년들의 신용카드 리볼빙은 사상 최대치를 갱신 중이다. 샤넬 백이 몇 번의 가격 인상을 거쳐 천오백만 원을 호가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오히려 열광하며 줄을 서서 구매한다.
이런걸 보면 패션은 애초에 합리적이지가 않은 시장인 것 같다. 이 업계에서는 잘 팔고 싶다면 가격을 올리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소위 브랜드값을 혐오하던 나 역시도 조금은 그 현상에 동조하게 된 지도 모른다. 나 또한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옷을 디자인하고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옷 한 벌에 많은 고민과 땀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창작물이자 상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브랜드도 있지만, 한국 패션 시장에는 불법 카피와 편법을 일삼는 그저 옷팔이들이 가득해 보인다.
그들을 욕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패션을 사랑한 게 아니라 돈을 사랑한 것이니. 다들 그렇게 한다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변명, 이해한다. 나는 느려도 올바르게 가는, 속이지 않는, 오래 기억되는 옷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어제는 신발 한 켤레에 이틀 치 아르바이트비를 지불해 버렸다. 옷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이, 신발을 사면 그에 맞는 바지를 사고 싶어진다. 바지를 사면 어울리는 상의를 찾게 된다.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맞춘 그럴싸한 룩은 다음 해가 되면 옷장 속에 처박히곤 하며 나는 또 새롭고 트렌디한 옷을 찾는다. 버려지거나 중고장터에 반값에 팔려나가는 옷을 보면 허탈하다가도 어느새 나는 온라인 편집숍과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린다. 장사꾼 입장에서는 너무도 긍정적이지 않은가. 우리는 멋지고 힙해지기 위해 기꺼이 꾸밈 비용을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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