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알코올 중독에서 회복 중인 회복자 선생님이 학교에서 강의를 하러 오셨다. 강의 내용도 충분히 유익했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선생님은 강의를 듣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알코올 중독자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한 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는데,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말하길 “가급적이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회복자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며 정말 맞는 표현인 것 같다고 감탄을 하셨다. 꽤 오래된 기억이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남아있는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중독자를 대하는 모습을 관통하는 답변이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중독자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는 알코올, 약물 등의 중독이 속하는 정신질환자에 관련된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물론 각각의 정신질환에 따른 개별적 특징에 있어서 다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신질환이나 중독 문제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과 함께 우울장애 등의 정신질환의 경우 점차 질병론적 관점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반면, 중독의 경우 질병론적 관점보다는 개인의 도덕성과 결부시켜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기에 중독자에 대한 인식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과 전체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부정적일 것이라고 예상된다.
앞서 언급한 질병론적 관점과 도덕적 관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면 질병론적 관점은 개인이 경험하는 건강상의 문제(중독을 포함한 정신질환 등)를 질병 혹은 신체적인 문제에 기인하는 증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며, 도덕적 관점은 건강상의 문제(중독을 포함한 정신질환 등)에 대해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요인을 배제한 채 개인의 의지와 도덕성의 결여를 문제의 원인으로 여기는 관점이다. 후에 조금 더 자세하게 다루겠지만, 이러한 차이는 개인이 경험하는 문제를 드러내지 않도록 만드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의 정신건강실태조사(2021)에 따르면 정신장애의 평생 유병률은 27.8%로 4명 중 1명이 평생 중 한번 이상 알코올 사용장애, 니코틴 사용장애, 불안장애 혹은 우울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신장애를 경험하는 사람들 중 평생동안 정신건강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12.1%로 나타났다. 또한 이는 캐나다 46.5%(2014) 미국 43.1%(2015) 등과 비교할 때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1년 유병률과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의 경우 중독과 다른 정신질환의 차이가 분명하게 나타났는데, 우울장애의 경우 1년 유병률이 1.7%이고 1년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이 28.2% 였지만, 알코올 중독은 경우 1년 유병률이 2.6%이고 1년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이 2.6%였다. 즉, 알코올 중독이 우울장애에 비해 1년 유병률이 1.5배가량 높은데도 불구하고 이용률은 1/10로 나타났다.
이러한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우리 사회가 그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관련이 깊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관점이 더 옳은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어떠한 관점으로 그 문제에 접근해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중독의 문제를 도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 사회의 중독 문제를 더욱 더 깊은 음지로 감추도록 만든 것 같다.
식품의약안전처에서 전국 34곳의 하수처리장을 검사한 결과 34곳 모두에서 잔류 마약이 발견되었다. 마약 중 가장 많은 사용비율을 보이는 대마를 제외했는데도 불구하고 34곳에서 모두 발견되었다는 사실은 마약이 우리나라 전국에 퍼져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가 어떠한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에서 찾을수록, 개인이 경험하는 어떠한 문제가 개인의 도덕성을 부정할수록 누구도 그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 최대한 숨기고 숨기다가 악화되어 마침내 숨겨지지 않을 때 발견된다.
중독은 충분히 회복될 수 있는 질병이다. 그리고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회복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 감기에 걸린 사람에게 위생적이지 못했다는 책임을 묻지 않듯, 중독에 있어서도 개인의 의지와 도덕을 묻기보다 치료적 개입을 우선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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