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매거진 "마지막 겨울" lastwinter.kr
최재훈의 패션 이야기

[최재훈의 패션이야기] 콜라보레이션 전성시대

by 마지막겨울 2023. 10. 15.
728x90
반응형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은 협업 또는 공동작업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패션, 음악, 건축, 미술, 제조업 등 각 분야를 뛰어넘어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여 각 협력자에게 유익한 결과를 내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각 기업과 개인은 콜라보를 통해 신선한 컨셉과 제품 생산으로 소비자들과 소통할 수 있으며, 그들이 갖지 못했던 브랜드 이미지를 타사와의 콜라보를 통해 일시적으로 보여줄 수도 있다. 콜라보레이션은 혁신적인 이미지와 동시에 각 브랜드의 소비자층을 공유하며 화제성 또한 챙길 수 있는, 패션 업계에서 꼭 필요한 마케팅 수단이 되었다.

 


콜라보레이션의 효과


첫째로, 콜라보는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의 브랜드가 명성 있는 타사와의 콜라보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와 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써 활용될 수 있다. 명품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자사가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도약을 도모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둘째, 콜라보는 브랜드를 신선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브랜드의 지루함을 벗고 이미지 쇄신을 하여, 그 가치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 전통 브랜드가 전혀 예상 못 했던 기업과의 협업으로 신선한 이미지를 부가하여 제품과 브랜드의 수명을 늘리는 효과를 보게 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제분 회사 곰표의 곰표 맥주, 곰표 패딩 등은 여러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콜라보의 성공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각자 다른 고객을 지닌 브랜드 간의 콜라보로 기존에 없던 제품 카테고리와 고객층을 확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이런 협업을 통해 출시된 제품들은 일정 기간 한정 수량으로 시장에 풀려 고객의 구매욕을 자극하기도 한다. 
콜라보레이션, 무조건 성공할까?


현재 패션 업계에서는 브랜드의 수많은 콜라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성공만큼이나 실패와 고객들의 실망 속에 묻힌 콜라보 제품들이 쌓여가고 있다. 무엇이 실패한 콜라보를 낳는 것일까?


1. 무분별한 콜라보, 콜라보는 흥행 보증 수표가 아니다.
남들이 다 하기에 하는 협업, 그 속에 공동의 목표와 스토리가 없이 두 브랜드의 로고만 넣어 만든 제품 콜라보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콜라보로 전락하기 쉽다. 또한 각 브랜드의 특성과 타깃 고객을 고려하지 않고, 두 브랜드 간의 간극을 소비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선에서 좁히는 깊은 고민이 보이지 않는 콜라보는 실패할 확률이 매우 크다. 노숙 대란을 일으켰던 발망-H&M의 콜라보가 한 달 후 중고거래 장터에서 저가에 처분됐던 예가 있다.


2. 참신함을 잃어버린 콜라보레이션
혁신 없는 콜라보는 두 브랜드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했던 소비자들에게 큰 실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의외성은 콜라보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패션 상품 콜라보에서는 신선하면서도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고 심지어 예쁘기까지 한 제품들이 요구된다. 완벽한 제품은 없지만 각 브랜드의 소비자들을 모두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뻔한 콜라보는 지루한 브랜드 이미지를 남길 뿐이다.


3. 브랜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콜라보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담지 못한 협업은 의미가 없고 오히려 브랜드를 퇴보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제품이 나오거나 지나치게 한쪽에 치우친 콜라보는 서로의 강점을 적절히 섞지 못해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협력하지 않는 교회, 콜라보는 우상인가?


21세기는 글로벌 시대이자 모두가 함께 사는 디지털 시대이다. 몇 초 만에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마주하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고, 서로에게 유익한 콜라보는 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만의 세상이자 외딴섬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쟁이는 고지식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보인다. 협력해야 할 교회들조차 교리와 이해관계로 인해 서로를 배척하는 변질된 교파주의가 기독교에 뿌리내린 듯하다. 무분별하게 세상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교회로서 있을 수 없고, 지양해야 하지만 기독교의 가치와 성경 말씀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수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또한, 교회는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가 소통과 이해를 통해 함께 복음을 전하는 선한 콜라보하게 되길 바라며 고린도 교회의 분쟁에 대한 사도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자.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고린도전서 1:13)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영원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매거진 '마지막 겨울'

이메일 구독을 눌러주세요

글 최재훈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