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의 역할은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하고 노래하는 일은 목소리로 할 수 있는 가장 신비한 일입니다. 성도들은 모이면 어디서든 찬양을 드립니다. 예배에서 최소한의 요소가 말씀 읽기/나누기, 기도 두 가지라면 사실 두 가지로 다소 아쉬움이 들기도 해요. 특별한 자리와 공간에서 노래를 들으면 인상에 깊게 남겨지지요.
하물며 노래를 직접 부르는 일은 더 많은 감정과 느낌을 전해요. 소박한 기도회에서, 수련회나 집회에서, 감동하며 부른 찬양과 그 한 줄의 가사는 말보다 강력하고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찬양의 역할은 분위기를 띄우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분명 활력과 생생함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지요. 간혹 호응을 유도하며 감정을 고조시키는 도구로 찬양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아쉽습니다. 어쩌면 찬양의 역할은 헌금과 비슷해요. 그 자체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어요.
좋은 멜로디와 가사가 결합되면 사람의 감정부터 이성까지 사람의 전부를 움직이는 신비함이 나타나요. 그 이유는 저도 설명할 수 없고, 누구도 밝히지 못할 거에요. 음악은 그렇게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것이고 회중이 한 목소리로 찬양하는 순간 그 힘이 증폭되는 일도 보게 됩니다.
예배 찬양에 관한 고민이 다양합니다. 어떤 찬양을 불러야 할까요? 어떻게 찬양해야 할까요? 선곡자, 인도자, 노래하는 사람, 연주하는 사람 모두가 고민이 많습니다. 또 여러분은 찬양하면 대체로 어떤 생각이 들곤 하요? 회중들은 찬양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바로 '익숙함'과 '낯섬'입니다.
저는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고려해야 할 두 가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두 가지는 서로 연관된 것인데요, 바로 '익숙함'과 '낯섬'입니다. 익숙한 찬양과 낯선 찬양, 다르게 말하면 편안한 찬양과 새로운 찬양이에요.
먼저 ‘익숙함'을 이야기 해볼까요. 쉽게 익혀지고, 따라 부르기 쉽고, 많이 불러서 친숙한 곡들이 있지요. ‘나같은 죄인 살리신’ 같은 고전에서부터 ‘은혜' 같은 근래의 노래까지, 감동이 금새 찾아온다면 그건 좋은 찬양입니다.
가사의 중요성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리 좋은 가사도 어려운 멜로디에선 힘을 잃어요. 예배에서 내가 잘 알고 자주 부르는 곡을 부르면 마음이 한결 편해요. 익숙할 수록 참여가 쉽습니다.
그래서 선곡의 우선 기준은 익숙함입니다. 단 한 곡으로도 사람들의 흩어진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어요. 예배가 마친 후에도 그 한 곡의 잔향이 마음 속에 남아요. 노래를 편곡하고 연주할 때도 '편안함'이 전달되어야 해요. 멜로디 전개와 흐름이 사람들의 예상과 맞으면 안전함을 느끼게 됩니다.
예배에 오르간 전주가 필요한 이유는 찬송가의 익숙한 그 멜로디가 마치 귀향의 느낌을 주기 때문일거에요. 익숙함은 반복을 통해서 만들어지기도 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익숙하게 되면, 비로소 찬양을 부르면서 기도도 하고 깊은 묵상도 가능하게 돼요.
이제 '낯섬'을 살펴볼까요. 새로운 것으로 신선한 자극을 주고, 변화를 통해 더 나은 것을 발견해가는 과정, 이 때의 반응이 낯섬입니다. 새로운 찬양을 부르고 기존 곡을 다른 분위기로 편곡하는 '낯설게 하기' 작업이 필요합니다.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매우 낯선 것에서 조금 낯선 것 사이에서 결정해야 해요.
새로운 가사와 멜로디, 새로운 동작, 새로운 분위기를 익혀가는 것은 어린 아기가 손가락 운동을 통해 손의 감각을 발달시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음악의 감각이 발전하게 되지요. '새로움'에 대한 욕구가 끝없이 증가하는 시대, 뻔한 것을 싫어하며 똑같은 일의 반복에 쉽게 지루해하지는 시대인 만큼 '새로움'은 찬양에서 꼭 고려해야 해요.
그런데 낯설고 새로운 것들은 때로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저도 찬양 편곡 들에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요. 박자가 어려워서 따라하기 힘들고 원곡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진 편곡들은 실망감도 남깁니다. '낯서'은 확실히 '익숙함'보다는 어려운 영역이고 힘든 기술입니다.
의외로 낯선 자극은 작은 변화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어요.
매 예배 마다 새로운 1곡을 익힌다면 매년 50여 곡이니 상당한 음악적 소양이 요구됩니다. 의외로 낯선 자극은 작은 변화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어요. 노래를 크게 부르기와 작게 부르기, 눈을 감기와 뜨기, 손을 마주 잡기 혹은 손을 들기, 새벽 혹은 저녁에 부르기, 이런 차이들에 주목해보세요. 곡의 빠르기를 세심하게 조정하기, 전주를 새롭게 만들기, 악기의 수를 조절하기, 코드(화성) 한 두개를 바꾸기, 이런 것들이 사실 새로움을 주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예배 속에서 찬양을 부르면서 ‘익숙함'과 ‘낯섬'의 순간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세요. 현대 예배 찬양이 부르기 어렵고 깊이가 없다 단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곡이라면 당연히 좋은 곡이 아니에요. 좋은 현대 찬양은 금방 따라 부를 수 있고, 묵상거리가 많습니다.
그래서 작곡자들에게는 큰 부담과 책임도 따릅니다. 저는 찬양이 사람의 진심을 전달한다고 여겨요. 진심은 가사만 아니라 멜로디와 편곡에서도 전해집니다. 음악이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좋은 가사가 있어서만 아니라 정서와 감정이 가락에 담기기 때문이지요. 예배 찬양은 함께 부르기 위해 만든 노래이니 더욱 공감하기 쉽습니다. 찬양에 담긴 진심이 무엇일까 마음을 열고 함께 찾아보기를 기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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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용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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