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약함과 섹시함의 상관관계
모두가 자기 계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건강한 몸과 정신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요즘,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와 잘 관리된 바디라인은 큰 매력으로 여겨지며 많은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필자 역시 건강과 멋있는 몸을 만들기 위해 꾸준히 운동하며 매일 아침 저울 위에서 몸무게를 확인한다. 이와는 반대로, 건강과는 반대되는 이미지인 병약미, 퇴폐미를 선호하고 이를 추구하는 모습도 보인다. 유독 피곤해 보이는 얼굴과 무언가에 취한 것 같은, 아파 보이는 몰골을 한 그들에게서 왠지 모를 섹시함이 느껴진다.
퇴폐미의 대명사로 불리는 헤로인 시크는 패션모델과 가수 등을 통해 알려졌고, 케이트 모스의 캘빈클라인 화보와 함께 대중에게 확산하였다. 깡마른 몸과 다크서클, 몽환적인 분위기, 다 갖추었으면서도 어딘가 초연해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1980-90년대의 주류였던 풍만한 건강미와 대비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명확히 하자면 헤로인 시크는 몸매와 얼굴을 지칭하는 경향이 있지만, 헤로인 시크 스타일이 패션계의 반문화와 하위문화와도 연결되며 대중들은 그들의 자유롭고 시크한 패션까지도 따라 하는 현상이 보여진다.
그토록 나쁜 것에 끌리는 우리, 인간
금지된 마약을 미화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으면서도 헤로인 시크의 퇴폐미에 열광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우리는 왜 그리도 나쁜 것에 끌리는 걸까? 첫 번째는 이 스타일의 ’유니크함‘ 때문일 것이다. 기존의 틀에 반하며 등장한 헤로인 시크는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 대중과 패션계에도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기존의 흐름에 따르지 않으면서도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매력을 패션계는 놓치지 않았으며, 다크서클이나 주근깨, 마른 몸과 같은 본연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차별성과 유니크함에 대중은 크게 공감한 것이다.
두 번째는 ‘해방감’이다. 파티와 술에 취해 밤을 지새웠을 것 같고, 자유로워 보이며 규율과 지루한 인생에서 해방된 것만 같은 헤로인 시크의 이미지는 우리의 정형화된 일상과는 대비된다. 대중들은 이러한 스타일을 소비하면서 일시적 해방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뷰티계에서도 숙취 메이크업, 주근깨, 다크서클 메이크업 등이 차례로 유행했는데, 이를 통해 사회적 기준에 맞추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하는 해방적 욕구가 비친다.
마지막으로 헤로인 시크는 우리의 본능을 자극하는 ‘자극성‘을 내포한다. 퇴폐적이라는 단어는 도덕이나 기풍 등이 쇠하여 문란한 것이라는 뜻이다. 헤로인 시크는 그 단어의 속성과 같이 도박, 술, 마약 혹은 성적인 쾌락이나 불건전함과도 결부되며 자극적인 쾌락을 좇는 인간의 욕망을 건드린다. 금지된 것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이 스타일은 왠지 쿨하고 멋져 보인다.
한동안 온라인상에서 창의적이고 독특한 사람이나 평범하지 않은 콘텐츠에 대한 찬사로 약 빨았다는 말이 사용되곤 했다. 이는 마약을 연상시키는 표현이기에 사용되어선 안 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마약은 우리 사회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고 그 중독성과 폐해가 여러 경험 사례로 드러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10년간 미국 내 마약성 약물로 인한 사망자가 3배 이상 늘어났으며,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는 마약을 복용한 채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펜타닐 중독자들로 인해 좀비 거리라고 불린다. 국내에서도 마약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지고 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10대 청소년들이 공중화장실에서 마약을 복용했다는 기사가 떠오르고, 클럽에서 마약성 약물을 술에 타 여성에게 마시게 하는 등의 범죄 행위도 수차례 보도되고 있다.
이렇듯 약물 중독이 만연해지고 있는 상황에 약물 사용을 미화하거나 가볍게 보고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떤 영향을 불러올지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의 윤리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비판적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원죄와 죄의 습성, 건강한 행복을 찾아서
우리는 금지된 것을 행하고자 하는 호기심이 있는 듯하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불순종했을 때부터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나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려는 성향을 가졌다. 그것들은 달콤해 보이며 우리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는 더 새롭고 강한 자극을 찾아 더 큰 죄를 저지르고 결국 파멸의 길로 빠지고 만다. 여기서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욕망과 쾌락만을 좇지 않고 영원히 채워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그분의 십자가 지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잇고 영생을 얻게 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는 채워져야 한다. 그리고 죄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회개는 회심을 뜻한다.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와 십자가 사랑을 통해 진정한 기쁨을 누려보자. 스스로 죄의 문제를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의를 구할 때, 요동치는 파도같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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